종단별, 지역별,
주지스님별 등으로
검색이 가능합니다.
지난 6월 16일 순례길을 다녀왔다. 서귀포 봉림사를 시작으로 약천사와 법화사를 돌았다. 봉림사에는 새롭게 일주문이 세워져있었고 법당 뒤편으로 샘물이 흐르고 있었다. 절물이 잘 되어있는 걸 보니 오래된 절집임을 알 수 있었다. 법환포구입구의 정대교, 마을이 어디 소속하는가에 대한 관심이 예전 사람들도 많이 가졌던 것 같다. 정의현과 대정현 사이에 어디에 속할 것인가를 두고 법적으로 시시비비를 논하다보니 이름 또한 법환(法還)이다. 이곳으로 가는 길에 연동연대에 올랐다. 저멀리 삼매봉이 보이고 바로 앞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는 모습이 전망이 좋았다. 그 연대 옆으로 누군가는 저 혼자서 그 좋은 경관들을 다 가지려하는 듯이 벌써 개인소유물인 커다란 저택을 짓고 있었다. 좋은 경관들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취하려는 마음 때문에 분쟁이 생겨나는 것을 왜 모르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함께 누리고 베풀줄 아는 마음을 갖고 개발을 시도해야 할 텐데 좋은 것은 모두 개인의 이익을 위해 취하려는 욕심으로 서귀포도 몸살을 앓고 있었다. 가는 길에 공물이 있었고 바다와 관련된 여러 군데 눈에 띄는 문화재들이 있었다. 최영장군 승정비가 최근에 조성돼 있었다. 거기서 최영장군이 어떻게 제주를 오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김보성 씨가 들려줬다. 묵호의 난에 관련된 이야기. 제주도는 예로부터 많은 외세침탈에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외지인들이 함부로 와서 주인노릇을 하는 형국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듯이 보인다.
포구입구에 있는 식당에서 자리물회를 먹고 다시 법화사를 향했다. 법화사에는 스님이 나와 오후의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법화사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김보성 씨에게 왜 부처님이 한 손은 땅을 가리키고 있는지 항마촉지수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부처님이 수행 중에 마왕 파순이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마를 조복 받는 모습이 바로 항마촉지수인을 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인 것이다. 부처님의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대웅전 앞으로 난간처럼 만들어진 월대는 궁궐의 풍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특이한 모습이다. 법화사의 구화루는 여전히 민낯의 촌색시마냥 그대로라 반가웠다. 그 앞으로 구품연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담은 모습이다. 그런데 법화사의 연못은 물이 너무 맑고 차가워서 연꽃이 피어나질 않는다니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하다. 오죽 사이로 스님이 거처방으로 드는 모습을 보면서 법화사를 나왔다. 거기서 다시 동수물로 가 예전 사람들의 자연만이 아니라 외지인들의 괴롭힘으로 고통받던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 우리의 삶이 또한 얼마나 평화로운지를 고맙게 생각했다.
그리고 약천사로 발길을 옮겼다. 웅장한 3층법당에 동양최대의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는 약천사를 보면서 혜인 스님이 몸집은 아주 작지만 원력은 정말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분이 이제 몸이 많이 아프시다니 한편 마음이 편치를 않았다. 어서 빨리 쾌차하길 바랄 뿐이다. 약천사에서 법화사로 이동 중 서귀포 본향당에 들렀다. 김보성씨 말로는 당올레 중 가장 아름다운 길이 그곳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에 사람들이 오가면서 생긴 자연의 길. 풀과 나무와 흙이 조화롭게 있는 아름다운 길이 아직도 그대로 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그런 길이 사람들 눈에 띄지 말고 그대로 간직되길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당에는 지전과 오색끈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고 주변도 말끔히 정돈돼 있었다. 식구들의 무병장수와 무사를 빌기 위해 수많은 어머니들이 이곳을 다녀갔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마음이 기도의 마음이고 수행이 마음일 것이다. 그 마음이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란다. 거기서 다시 컨벤션센터 근처를 지나 옛광명사와 천제사를 향해 간 뒤 그곳에 회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