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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가 눈발이 휘날릴 때면 매화가 만발하고, 만개했던 동백꽃은 순결의 이미지를 상징하듯 툭 떨어져 도량을 붉게 물들이면 겨울은 이미 끝을 알린다. 부처님오신날 즈음이면 도량은 짙푸른 숲으로 뒤덮이고 알알이 맺힌 매실은 그윽한 향을 머금는다. 봄의 파릇한 약속은 짙은 녹음을 만들어 내며 순환의 고리에 따라 도량은 새로운 계절의 옷을 갈아입는다.
월정사는 구전에 의하면 지난 1871년 토굴에서 수행하던 스님이 머물렀던 곳이라 한다. 그 명맥이 이어져 지난 1934년 김석윤 스님이 제주포교소 월정암을 창건, 오늘의 기반을 다졌다.
1938년 ‘불교 시보’에 따르면 월정사가 조선불교 중앙선리참구원 제1지방분원으로 마련돼 제주 최초의 선원이 탄생했음을 알 수 있다. 선원의 창건은 김석윤 스님이 제주불교의 중흥을 꾀하려 했던 취지로 당시 제주에는 선원의 체계를 갖춘 사찰이 전무했다. 현재도 월정사는 선학원 소속으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지난 1948년 4?3의 광풍이 빗겨가지 않았는데 그해 12월 토벌대에 의해 건물 5동이 불타고 월정사를 지키고 있던 김석윤 스님의 아들 덕수 스님이 토벌대에 끌려가 박성내 집단학살 현장에서 죽음의 비운을 맞는다.
선원의 꿈을 안고 뜻을 펴 보기도 전에 월정사가 완전히 폐허가 된 순간이다. 시신을 거두지 못한 덕수 스님의 뜻을 기리고자 비석이 월정사 경계 동쪽에 세워져 있다.
그 후 월정사는 故 비룡 스님(전 천왕사 조실), 정명 스님, 정진 스님, 현도 스님(현 김녕 금용사 주지) 등에 의해 사찰의 명맥을 유지하다 지난 1974년 지문 스님이 주지 소임을 맡으면서 제2의 창건을 맞게 된다.
지문 스님은 지난 1979년 여법한 도량을 새롭게 조성하고자 중창불사의 원력을 세우고 3년 동안 1000일 동안 기도를 봉행했다.
기도를 통해 신구의 삼업을 청정해 닦아나간 스님은 부임 8년 만인 지난 1982년 40평 규모의 대웅전과 요사채를 이뤄내게 된다. 지난 2000년 12월 이조여래좌상과 목조보살입상이 제주도문화재자료 제4호로 지정 보호되는데 힘입어 지난 2001년 10월 전통사찰로 지정됐다. 또한 지난 2005년 전통목재 양식의 일주문과 극락보전이 완공돼, 여법한 전통가람을 갖춤으로써 전통사찰의 위상을 제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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